자양동
위치
자양동은 동으로는 비룡동.용운동, 서로는 가양1동?소제동, 남으로는 대동, 북으로는 가양동과 연접해 있다.
유래
자양동은 가양동과 함께 송우암이 궐리라 명명한 소제 땅과 연결하여 지은 지명으로 자양부자 즉 주자를 연상하여 이곳을 자양이라 하였다. 또한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될 때의 명칭인 자양정을 그대로 따서 자양동이라고 하였다.
연혁
백제 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에 속했다가 뒤에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1413)엔 다시 회덕현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동광산 아래에 있으므로 동광이라 불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탁곤리, 성동을 병합하여 소제리에 붙어서 대전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11월 1일 대전부 신설에 따라 대덕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되면서 자양정이라 하다가, 1946년 해방과 더불어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자양동이라 하고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91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 동구 자양동이 되었다.
지명
감마무골 | 동지갱이 동쪽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대전상고와 자양동 동아아파트 사이의 임광하이츠 부근에 있었고 옛날에 이 마을에사는 김판선이라는 사람의 집에 큰 감마무가 있어 이 마을을 감나무골이라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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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작골[골] | 탁곤이 남쪽, 지금의 자양초등학교 북쪽, 우송공업대학 중앙도서관 부근에 있었다. 돌이 많은 골짜기로서 독작골이라고불렀다. ‘독작’은 돌과 자갈을 말하는 이 지역 방언이다. |
동광[마을] | 감나무골 남서쪽, 동지갱이 남동쪽에 자리한마을로서, 지금의 동광초등학교 북쪽 부근에 있었으며 마을의 북동쪽에 자리잡고있는 동광산 아래에 마을이 있어 동광이라고 하였다. |
동지갱이(동자간)[마을] | 감나무골 서쪽 들 건너에 자리한 마을로서, 지금의 대전상업고등학교 북쪽이 청림아파트 부근에 있었고 추운 동지에도물이 흐르는 계곡에 있는 마을이라 동지갱이라고 불렀다. |
방죽안[마을] | 성동 동남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지금의 동광초등학교와자양동사무소 사이였다. 방죽 안에 마을이 있어서 방죽안이라고 하였다. |
성동[마을] | 탁곤이 북동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지금의우송공업대학 자리였다. 마을에 송(宋)씨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살아서, 송동(宋洞)으로 부르다가 벼하여 성동(姓洞)으로 되었다. 또는 정조때 성리학자 성담 송환기가 살던 곳이라 그의 호를 따서 성동이라 불렀다. |
안터[마을] | 감나무골 북동쪽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동아공업고등학교 부근에 있었다. 마을이 안쪽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하여안터라고 불렀다. |
절구니[골] | 자양초등학교 서남쪽에 있었으며 사람이 죽으면절구어 낼 정도로 후미지다고 하여 절구니라고 하였다 |
탁곤이[마을] | 성동마을 서남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지금의자양초등학교 북서쪽에, 우송정보 대학 동쪽 부근에 있었다. 마을 지형이고니처럼 생겨 탁곤이라고 불렀다. 자양동에서 가장 큰 마을로서, 백씨(白氏)와 전씨(全氏)가 많이 살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