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전동
위치
동쪽은 대덕구 오정동, 남동쪽으로는 가양동, 남쪽으로는 성남동, 북으로는 대덕구 중리동과 연접해 있다.
유래
용이 노는 지역이라 하여 용밭, 용전이라고 불렀다.
연혁
백제 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의 영현인 유성현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회덕현에 속했다가 현종 때는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다시 회덕현에 속했으며, 조선 말 고종 32년(1895)에는 회덕군 외남면의 지역이었는데, 행정구역 통폐합에 다라 1914년 내남면의 송촌 일부를 병합하여 용전리라 해서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하였다. 그후 1935년 11월 1일 대전부 신설에 따라 내남면의 거의 전부가 대전부에 편입되면서 용전리라 하고 1977년 9월1일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1일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동구 용전동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용전동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지명
납작골[마을] | 큰동리 남쪽, 홈통골 서쪽에 있던 마을로서, 현재는 고속터미날 북쪽 부근이 되며 마을 지형이 야산아래 납작하게 생겨 납작골이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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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골[마을] | 용구말의남동쪽, 큰동리와 납작골 사이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 서진운수 부근이었다. |
상적말[마을] | 큰동리 남서쪽, 용두말과 도둑골 사이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세영연립주택 서쪽 부근이었고 그 주위는 전부 논이었다. 상적말 앞에 아홉마니지 둠벙못이 있었다. |
시구지[들] | 납작골 남서쪽, 지금의 용전사거리 부근에 있었고물이 쉬 빠진다고 시구지라고 하였다. |
용구말(용구촌) | 용전마을 동쪽에있던 마을로서, 현재는 용전사거리 남동쪽, 용전동사무소 부근이었으며 마을 지형이 용의 입처럼 생겨, 용용자 입구자를따서 용구말이라고 하였다. |
용밭(용전) | 용전동전체 지역을 통칭하기도 하며, 납작골 남쪽에 있던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납작골 남쪽의 용밭은 지금의 고속터미날부근이며 이곳에는 백 년에 한 번씩 용이 하늘로 오르며, 그럴 때마다정승이 이곳에서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전설에 따라 승천을 기다리는 이무기가땅 속에서 노는 땅이라고 하여 용 용자 밭 전자를 따서 용전이라 하였다. 한편 이와는 달리 이 용전을 주역에 건의 두 번째 효에 해당하는 효사로 그것을 “현룡재전에이견대인”이라는 구절에서 용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
장봉(비석거리) | 용구말 서쪽에 있던마을로서, 지금의 용전초등학교와 용전주공아파트 사이 부근 이었다. 이 곳은 용구말 뒤의 낮은 구릉에 20여호가 살던 마을이었다. 마을 근터에 차(車)씨네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라고 하였다. |
진등(진등서낭목.긴등)[마을] | 통골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현재는고속터미날 동서로 건너편 부근이다. 홈 용전동 일부와 성남동에 걸쳐 있었으며 긴산등성이에 마을이 있다 하여 진등이라 하였다. 또한 그 마을 앞에 서낭(성황)나무가있어 진등서낭목이라고도 하였다. |
큰동리(원용천) | 납작골 북쪽에 있던 마을로서, 현재는 한전앞(서남쪽)일대였음며 용전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어서‘큰동리’라고 하고, 용전마을의 원래 마을이어서 원용천이라 하였다. |
홈통골[마을] | 쿤동리 원용천 남동쪽에 있던 마을로서 , 지금의 동부사거리 북서쪽부근이었다. 마을의 골짜기가 홈통처럼 생겨 붙여진 지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