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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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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용운동은 동쪽으로 삼정동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자양동, 대2동과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판암2동, 북쪽으로는 가양2동, 비룡동과 접해 있다.




유래

용운동의 본디 이름은 용방이었다.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 용방리, 즉 용의 마을이 된다.그것은 이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지형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던 것이다. 즉 용의 머리로 상징되는 탁구니 고개아래의 용수리, 용의 날등을 상징하는 대전대 뒷산의 용날, 그리고 용이 누운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아파트단지마을의 와룡등에서 그 용방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용방이마을의 입구 용운천 좌측 들파느이 마을을 예부터 구름들 즉 운평이라 했다. 그것은 정조 때 학자 운평 송능상이 출생한 곳이라 하여 그의 호를 따서 구름들이라 이름붙였는데 그 뒤 행정동명이 확정될 때 용방의 용자와 운평의 운자를 합쳐서 이제는 용운동으로 굳어진 것이다.

연혁

백제시대에는 우술군에 속했으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초기에 회덕현에 속했다가 현종 때는 공주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엔 다시 회덕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 말기엔 회덕군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용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량리, 모오리, 초동을 병합하여 용방리라 하여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고, 1935년 11월 1일 대전부 신설에 의하여 대덕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대전부 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부에 편입되어 용운정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946년 왜식동명 변경에 의하여 용운동으로 고쳐서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1일 대전직할시 동구 용운동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지명


가운데뜸(중뜸) 용운동의 가운데 있으며 동네의 가운데에마을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가운데 뜸.중뜸이라고 한다.
갈고개골[골] 갈고개 아래에 있는 골짜기이다.
갈고개(갈현) 갈고개에 있는 선암에서 동면으로 넘어가는높은 고개이며 성황당에 복숭아 나무가 당산나무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소실되어없다고 한다. 또한 이 성황다은 잡석이 던져져 쌓여진 석단이 거목의밑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거목에는 새끼줄이 둘러져 있다.10월 상달과음력 정초를 전후하여 아낙네들이 무당을 앞세우고 와서 재물을 차려놓고오색천을 나무에다 걸고 장수부귀와 가내평화를 빌었다.
갈골[골] 갈고개에 있는 골짜기이다.
갈현성[유적] 갈고개에 있는 백제산성의 이름으로 신상동으로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근장[마을] 설량 남쪽 외딴집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까치골[골] 주곡약수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꿩골[숲] 주곡약수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꿩떰이[숲] 새울 마을 뒤 참나무 숲으로 꿩이 많이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널제[마루] 용운동 고층아파트 남쪽에 있는 평평한 산등성이다.
두견골[골] 부엉이골 왼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두꺼비바위 현재 대전대학 6호관 북동쪽에 있는 바위로주변에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개나리 등이 있어 봄경치가매우 아름답다.
맹인골(천광리) 용바아을 옆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은 일제시대에는일본인이 아이를 출산하고 태를 소각한 속이라 하여 태거리라 하였다. 8.15해방 후 새로 생긴 마을인데, 앞을 못보는 맹인들이 사는마을이라 천광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몰리(모리, 모오리) 용방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때이 마을은 피해를 입지 않아 피해를 입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 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레방아골[골] 현재 용운동 파출소에서 북동쪽에 위치한골짜기로 설량부락 입구 용운천에 물방아가 있었다 하여 그리 부른다.
백룡고개[고개] 용솟골에서 서북쪽에 있는 자양동으로 넘어가는고개이다.
봉고(새울, 초동) 봉구메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학이날아와 놀던 골짜기가있는 마을이라 봉곡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깊은 산골짜기에 숲으로 묻혀 있는 마을이라 해서 초동일 부른다고하기도 한다. 또는 한자로 봉명동이라 표기되며 “새가울다”에서 새울이란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뒤 봉곡 송주석이 이곳에 살아서 봉곡이라하였닥가 봉곡선생이 이곳을 새동리라 하여 처음에는 신동으로 부르다가형님인 진안공 송은석이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의 초강 마을을생각하여 새울이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 이곳에는 사창이 있었다.
부엉이골[골] 꿩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부처바위[바위] 선량골 뒤 산마루에 있는 바위로 부처님처럼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무당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고 굿을하기도 한다.
붕곡[마을] 붕구메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붕구메[산] 새울 뒷산이며 부엉이가 많이 울었다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새울고개[고개] 판암동 구정골에서 새울로 넘어 오는 고개이며옛날 구정골 아가씨들이 새울고개를 넘어 삼성동 이연공장을 다니는 것이장관이었다고 한다.
선량(설량, 선량리)[마을] 용방마을의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부근에신선바위가 있어서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선량골[골] 선량마을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대전대학교 1호관 앞에 있는 골짜기이다.
성재[고개] 새울고개 남동쪽의 성에 있는 고개이다.
성화당1[제당] 설량골 뒷산 중턱에 위치한다.
성황당2[제당] 연애바위산 북쪽에 당산 나무가 있고 용솟골과대동의 경계가 있는 고개마루에 위치한다.
솟바위[바위] 연애바위 북쪽 성황당2 건너에 있는 바위이다.
수달피[골] 성재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신선바위[바위] 용운동 용방의 북쪽에 있는 바위로 용이승천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고 선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올라간다고 해서 신선바위라 부르며 신선바위가 있는 이 근처를 선량이라부른다.
양지말[마을] 용날등 남동쪽 아래에있는 마을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한 마을 연애바위 연애바위 산마루에 있는 바위로 젊은 남여가연애를 하러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옻샘[샘] 성황당2아래에 있는 샘으로 옻이 오른 사람이목욕을 하면 나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외막골[마을] 현재 용운동 주공아파트가 위치한 곳으로우암 송시열의 자부 묘가 있다.
용날등[마루] 대전대학교 6호관 앞에 있는 산성이로용의 등과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산] 용목산 위에 있는 산 이름이다.
용목산[산] 대전대 6호관 북동쪽에 위치한 산이다.
용방[마을] 용운동에 맨처음부터 있던 마을로 근처에신선바위가 있으며 왕자을 지키며 승천을 기다리는 이무기가 살던 방이 있다는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용숫골[골] 용방마을 뒤쪽에 위치하고 옛날에 용방에서백년동안 수도하던 이무기가 용이되어 승천할 때 이곳에서 승천하였다는데서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말[골] 용날등 뒤쪽 산바알을 말한다.
장문봉[산] 예비군훈련장 동쪽에 있는 높은 산이다.
주곡[골] 주곡약수터 위에 있는 골짜기이다.
청룡암[바위] 맹인촌의 동북쪽에 있다.
토광(둥범이)[못] 새울 뒤 들에 있던 4000여평의 저수지이다. 농업용수로 한몫을 하는 저수지였는데 1960년대 자라를 양식하였고, 현재는 논과 밭으로 변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토막골(토막동구) 용운골 위 예비군 훈련장안 사격장이 있는곳이다.
토막궁그리[산] 설량 위에 있는 제일 높은 산이름이다.
한대봉[산] 용운골 동남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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