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역사문화 아카이브

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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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대전시 동구의 남쪽에 위치한 동으로서, 대전역의 남동쪽에 있다. 효동의 동으로는 판암동, 서로는 중구 문창동, 북으로는 인동과 연접해 있다. 효동사거리를 중심으로 X자 형으로 인효로.가오동길과 효동길이 동으로 관통하며, 대전천이 남북방향으로 흘러 중구 문창동과 경계가 된다.




유래

자연부락명을 따지 않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건국초에 인(仁)과 효(孝)를 생각하여 인동이니 효동이니 하였다고 한다.


연혁

백제 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 고려초기에는 회덕현에 속했다가 현종때는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년(1413)에 다시 회덕현 산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장대리와 외남면 정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삼정목이라 하여 대전군 대전면에 편입되었다. 1946년 해방과 더불어 왜식 동명변경에 따라 효동이라 하고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1989년 1월1일 대전직할시 동구 효동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효동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지명


고수마루[들] 효동사거리 북쪽에 있던 밭으로서, 지금의중화실업 자리에 있었다. 남동쪽으로 작은 산줄기가 내려온 지역으로서, 지대가 놓아 대전천이 범람하여도 물에 잘 잠기지 않은 지역이어서고수마루라고 하였다.
냇가말[마을] 효동사거리 부근의 대전천변에 있던 마을로서, 장터남쪽에 연접해 있었다.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 냇가말이라고 하였다.
문창교[다리] 효동사거리 서남쪽에 있으며, 효동과 중구문창동의 경계지역인 대전천에 놓여 있다.
미골뜰(미곳들)[들] 효동사거리 남쪽 부근에 있었다.
생개(샘개, 정포)[마을] 효동 사거리 북쪽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인동 현대 아파트 부근이다. 깨끗하고 찬 샘과 내가 마을에 있어샘개, 정포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생개라고 불렀다. 속병에 걸린 사람들이이곳을 찾아와, 냇가에 포장을 쳐 기거하며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하던 곳이다.
장터(장대리)[마을] 인동과 효동의 경계지역 부근에 대전천변에있던 마을로서, 지금의 중화실업 동쪽 부근이 된다. 인동지역의 장터옆에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3.1만세운동을 전개하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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