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동
위치
대전동구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직동은 동구의 북쪽에 위치하였다. 직동의 북쪽과 동쪽은 대청호와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효평동, 남쪽으로는 마산동과 인접해 있다. 노고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대청호 건설로 마을이 거의 수몰되었으며, 서쪽 피골은 산과 호수를 저하고 있는 아늑한 곳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유래
백제와 신라가 노고성에서 크게 싸워 피가 내를 이루었다 하여 피골이라 하였다. 이‘피골’에서‘피’는 한자로 피 직(稷 )자를 음차하였다.
연혁
백제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 고려초기에는 회덕현에 속했다가 현종때에는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 초기에는 다시 회덕현, 조선시대 말 고종 32년(1895)에는 회덕군 일도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사동, 냉천리, 영장리, 성동, 마산하리의 각 일부와 주안면의 옹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직동리라 하고 대전군 동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35년 대전부 신설에 따라 대덕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덕군이 직할시에 편입되어 행정동인 추동의 일부로 소속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직동으로 명칭 변경되었으며 현재 행정동은 대청동이다.
지명
구남정이(부남정이)[산] | 싸리산 동남쪽에 있던 산으로서, 현재는 물에 다 잠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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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장골(건장골)[마을] | 양구레 북동쪽, 호반정이 동쪽에 있던 마을로서, 대청댐 담수로수몰된 지역이다. 옛날에 이 동네에 힘이 세고 오래 산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즉, 건장할 건(健)자에 씩씩할 장(壯)자를 쓰는 ‘몸이 크고 굳세다’는 뜻을 지닌 건장에서근장으로 변하였다. |
노고산[산] | 피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피골과 찬샘내기 사이에 있으며, 노고산성이 있는 산이라서 노고산이라고 하였다. |
돗골나루(독골나루)[나루] | 위 피골 북동쪽, 통뫼 동쪽 언저리에 있었으며, 물에 잠긴 조실구레끝에 있었다. 현재는 대청댐 담수로 물에 잠겼다. 조실구레에서 돗골로 건너가던 나루였으므로, 돗골나루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청댐 완성으로 자연히 없어졌다. |
말바위(마암) | 말바이산 북쪽에 있었으며 모양이 말을 탄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말바위라고 부른다. |
말바위산(마암산)[산] | 피골 북쪽, 우피골 북서쪽에 있으며 산북쪽에 말을 탄 모양의 말바위가 있어 말바위산이라고 부른다. |
먹뱅이[골] | 소태고개 동쪽에 있으며 지형이 후미져서, 깜깜한 방에 들어간것 같다고 하여 먹뱅이라고 하였다. 또 말바지라는 해석도 있다. 인가는 없고논밭만 그 곳에 있다. |
무골[골] | 소태고개 북동쪽, 마을 동쪽 호수너머에 있다. |
밀개봉[산] | 위피골 북동쪽, 통뫼 남쪼게 있다. 피골에서 찬샘내기로 가려면, 위피골을 지나 밀개봉과 노고산 사이로 갔었다. 대청댐 건설로 그 길이 물에 잠겼으나, 최근 다시 새로운 길을 닦고 있다. |
방골(밤골, 율곡, 방곡)[마을] | 조실구레 북쪽, 통뫼 서쪽에 있던 마을로서, 대청댐건설로 물에 잠겼다. 밤나무가 마을 주변에 많이 있어서 밤골이라 하였다. |
산막골[골] | 현재 남아 있는 양구레 마을 서북쪽에 있다. |
산수골[골] | 현재 남아 있는 양구레 마을 서남쪽 뒤에 있다. 그 곳으로 넘어가면효평동 당살미 마을이 나온다. |
서낭댕이 | 싸리산 남쪽, 잿박골 서쪽에 있었으며 성황당이 그 곳에 있어서서낭댕이라고 하였다. |
소태고개 | 함각산 동쪽, 양구레 남쪽에 있는 고개로서, 직동 남동쪽 끝이므로 마산동과 경계지역 에 있다. 백제군사들이 노고산성에서 군량을 운반하려 나왔다가신라군과 마주쳐 싸웠으며, 이 싸움으로 시체들이 사태가 나서 ‘사태고개’라고 부른데서유래하였다. 또는 이 고개에 유난히 소태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소태고개라고 하기도 한다. |
쇠전고개 | 밀개봉과 노고산 사이에 있다. 쇠를 만들던 가마터가 있어서 쇠전고개라하였으며 지금도 땅을 파면 솥을 구워내던 쇳물이 나온다고 한다. |
싸리산 | 현재 남아 있는 찬샘내기 동쪽, 구남정이 서북쪽에 있으며 싸리나무가그 산에 많아서 싸리산이라고 하였다. |
아득이나루 | 찬샘내기 동쪽에 있던 금강의 나루터로 현재 남아 있는 찬샘내기이북동쪽에 있었다. 마산동에서 양구레를 지나 찬샘내기 앞에서 아득이(청원군 문의면아덕리)로 건너가던 직동의 나루터여서 아득이나루라고 하였다. |
양구레(양굴) | 피골 남동쪽 산 너머, 찬샘내기 남쪽에 있었으며 양쪽(남북)으로낮게 고개가 나 있고, 동쪽으로 물이 흘러 나가는 지형이다. 따라서 북쪽과 남쪽 양골짜기 아래로 물이 흐른다고 하여 양구레라고 하였다. |
우피골 | 피골 북동쪽, 피골과 밀개봉 사이에 있으며 피골 위쪽에 있다고위(우)피골이라고 하였다. 노고성 아래에 있어 성말, 피골에 물을 대는 보 위쪽에마을이 있다고 하여‘위보골, 위보말, 상보골’이라고 기록에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는 피골을바탕으로 한 ‘위피골’로만 불려지고 있다. |
잿박골[골] | 싸리산 남동쪽, 호반정이 북쪽에 있다. |
조실구레 | 위피골 북쪽 산 너머에 있었던 약 1km정도의 골짜기로서, 옛날에는동리가 있었으나 대부분 물에 잠겨 없어졌다. 옛날에는 동네가 있었으나 지금은없어지고 다만 약 1km정도의 계곡에 논이 있는데 이곳의 나락이 일찍 익는다고 하여, 일찍 조(早)자에 열매 실(實)자를 따서 조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근거는 없다. |
찬샘내기 | 조실구레 남쪽 돗골나루 서쪽에 있엇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않고 얼음같이 찬샘이 있는 마을이라서 찬샘내기(냉천동)라고 하였다. |
통뫼[산] | 조실구레 북동쪽, 밀개봉 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서, 현재 봉우리만섬처럼 남아있다. |
피골(직동) | 노공 서쪽, 위피골 남서쪽에 있다. 백제군과 신라군이 싸워서피가 내를 이루었다하여 피골이라 하였다. |
할미바위 | 노고산성 꼭대기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할미처럼 생겼다고 ‘할미바위’라고부르기도하며, 노고할머니가 명주치마에 돌을 담아 쌓았다고 붙인 이름이라고도한다. |
호반정이 | 잿박골 남쪽, 양구레 마을 북동쪽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