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역사문화 아카이브

판암동




m40-01.jpg



위치

행정동으로서의 판암1동은 동쪽으로 세천동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느 효동, 판암2도, 용운동에 접해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대성동과 북쪽으로는 세천동, 비룡동과 경계을 이룬다.




유래

판암동의 옛이름은 너더리 또는 판교라고 했다. 너더리란 널다리가 변해서 생긴 말인데 대전~옥천간 국도변에 있는 은혜주택 옆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아 소제천(대동천)을 건너다녔다. 그래서 생긴 이름이 널다리 동네이고 그것이 널다리에서 너더리로 변했다. 그러나 조선조의 기록은 모두 한자에 의존 했으므로 말로는 너더리, 문자로는 판교리라 하였던 것이다.


연혁

백제시대에는 우술군에 속했으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에 속했다. 고려시대 초기에 회덕현에 속했다가 현종 때는 공주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 다시 회덕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 말기엔 회덕군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너더리, 판교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상신리(산소리), 저전리와 동면의 구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소리라 했다가 판암리라 하여,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11월 1일 대전부 신설에 의하여 대덕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대전부 구역확장에 따라 대전부에 편입되어 판암정이라 하다가 1946년 왜식 동명변경에 의하여 판암동이라 하고 그뒤 다시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 동구 판암동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지명


가막바위[바위] 풀송골 북동쪽에 있는 바위로 가마모양으로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개심사[사찰] 개심사는 판암동 산 87번지에 있으며 조계종사찰로 1940년 말에 창건한 절이다. 대웅전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체가 있으며절을 짓기 전 스님이 왔을 때 온산이 눈으로 덮여 있는데 현재 산산각에서대웅전이 있는 곳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이곳에 터를 잡고 개심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건너망태[들] 원망태의 건너편에 있다.
건는들보[들] 음지들보 위 건는들에 있던 보의 이름이다.
고래실논[들] 판암동 주공아파트에서 서쪽에 있는 논이다.
광답[들] 판암 주공아파트에서 북동쪽으로 있는 좋은농토이다.
광답보[보] 건는들보 위 광답들에 있었던 보의 이름이다.
구정골[모롱골] 판암동 주공아파트에서 옥천가는 대로변 왼쪽에있는 모퉁이이다.
구절[사찰] 새절공에 있는 암자 이름이다.
기도바위(집채바위)[바위] 사슴목장 윗골짜기에 있는 바위로 크기가집채만 하며 바위에 산왕대신이라 쓰여 있고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기도한다.
깍대골[골] 고산사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판암동쪽에있다.
날근터 집너머 서쪽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논과밭이 있다.
널별골[골] 물방아골에서 남동쪽으로 위치해 있는 골짜기이다.
널별들[들] 널별골 앞의 넓은 들을 말한다.
늘벌펀뎅이 매봉골 아래에 있는 판판한 곳이다.
담암골[들] 소쟁이와 물방아골 가운데에서 약간 남쪽에위치한다.
담암밭둥그나무[나무] 담암밭에 있는 느티나무로 둘레 4.5m, 높이 14m의 정자나무이다. 저월보름에 치성을 올리던 나무다.
도래뜰[들] 음지뜰 왼쪽에 있는 들판이다.
도래뜰보[보] 판암천에 막은 보로 음지뜰 왼쪽 도래뜰에있었다.
돌무들[들] 식장산 아래에 있는 들이다. 돌이 많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둠벙[못] 판암동 주공아파트 서쪽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다.
망탯골[샘] 소쟁이 동쪽에 잇는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망태와 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매방골[마을] 한지뱅이에서 북동쪽의 식장산아래 연자방아가있던 골짜기에 있는 마을
매봉골[골] 가막바위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명당터[터] 사슴목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집터로 좋다고하는데 현재는 묘지 6기가 있다.
물방앗골[골] 소정이 동쪽에 위치하며옛날에 물방앗간이 있었던 마을이라 물방앗골이라고 함
바깥오방골[골] 안오방골과 마주 보이는 골짜기로 안오방골에서동북쪽에 있다.
보추실보[보] 주공아파트 서쪽에 있는 보이며 물고기가많이 잡혔다고 한다. 현재는 복개되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복고리[골] 윤판동 아래 있는 골짜기이다.
살구쟁이 원모랭이 옆에 있는모퉁이로 옛날 건달들이 행인들에게 길세를 내라고도 하였다는 곳이다.
새절골[골] 복고리에서 증삼말 너머 옥천군 군북면으로가는 골짜기이다.
새터[마을] 집너머 남쪽에 위치한다. 새로 터를 잡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색경산봉우리 식장산 봉우리를 말한다.
성개산[산] 판암동과 삼전동, 용운동에 걸쳐 있는 산을말한다. 판암동의 북쪽 편에 위치한다.
성바랭이 성개산 아래 삼정동으로 가는 도중의 구부러지기시작하는 곳 왼쪽 편에 위치한다.
성재 벼랑이 있는 마을이라 성바랑이라고부른다.
성재(바라봉) 아을의 성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성재라고부르며, 또는 바라봉이라고도 부른다.
성재약수[샘] 성재 바로 아래 있는 샘으로 모진 가뭄에도물이 끊임없이 나온다고 한다.
성황당(서낭당)[제당] 한지뱅이에서 소쟁이 가기 전에 있으며 느티나무로된 정자와 돌무지가 있다.
소쟁이동네 담암밭 위에 있는 동네 이름이다.
소정리[마을] 함지방 서편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소정이(송정리) 집너머 동쪽에 있으며 마을 입구에 소나무가정자처럼 서 있다고 해서 소정이라 부른다.
소정이성화당 소정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200년 된 나무가있다.
수레날[마루] 큰덜개 서편에 있는 날망이다.
수멍뱅이들 보추실보 옆에 있는 논과 들이다.
안오방골[골] 옻샘거리를 지나서 천동 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양달말림[산] 한지뱅이 마을 동남쪽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있는 산이 이름이다.
양지말[마을] 음지말 맞은편의 마을로 늘 햇볕이 드는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우골[골] 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로 여우가 많았다고한다.
올리골[골] 새터의 동쪽에 있다.
와우재 큰덜개 및 소엉덩이처럼 생긴 고개이다.
용바위[바위] 개삼사 위에 있는 큰 바위이다.
용수암[사찰] 개심사 남쪽에 있는 암자이다
웃샘골(상천동)[마을] 자작바위 서쪽의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좋은 샘이 있는 마을의 위쪽에 있다고 해서 웃샘골이라 부른다.
원모랭이 판암동 세천 쪽으로 가는 모퉁이다.
윗방답보[보] 물레방아들 앞에 있던 보의 이름이다.
윗새터말[마을] 판암동에서 가오동 쪽에 있는 새로운 마을이다.
윤판동[마을] 한지뱅이 동쪽 식장산 줄기에 잇는 마을이다.
음지뜰보[보] 도래뜰보 위에 있었던 보의 이름이다.
음지뜸둠벙[못] 음지뜰에 있는 둠벙이름이며 여름에 마을사람들이 목욕을 했었다고도 한다.
음지말[마을] 판암 주공아파트 3단지로 양지말 맞은 편에있으며 그늘지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작바우[마을] 포도밭골 북쪽에 잇으며 마을 근처에 작은바위가 많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족골[골] 자족바위가 있는 골짜기로 판암 주공아파트서쪽에 위치한다.
자죽바위(지족바위)[마을] 현재의 판암동 동사무소 근처에 있으며 사여가나가지 않고 상여꾼들이 발검음만 자족자족 있었던 자리라 하여 자족바위혹은 자죽바위라 한다. 또는 쌍천당 두 손자의 우애어린 전설로 붙여진마을 이름이다.
재모골[골] 구정불 동쪽에 있는 식장산 골짜기이다.
잿뜰[들] 함지방이 앞에 있는 들판이다.
중논(절답) 판암동 주공아파트 남동쪽에 있는 절에 속한논이다.
큰덜개[골] 식장산 아래 물레방아골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판암천[내] 판암동 앞에 흐르는 냇물로 현재 일부는복개되었다.
풀송골[골] 수레날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한지뱅이동굴 판암동 주공아파트 동쪽한지뱅이로 들어오는 철로 아래에 있는 굴이다.
함지뱅이(한지뱅이, 한지방이, 한지병이)[마을] 물방아골 옆에 있으며 마을의 지형이 함지와같이 생겼다고 해서 함지뱅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토속

판암동의 자죽바위


역사인물

삼정동 산성


m40-02.jpg

SITE MAP

동구역사문화 아카이브